토요일. 몸살기운이 있어 하루 종일 골골거리다가 맥주 한 잔 먹으려니, 아내가 갈군다.
“몸도 안 좋은데, 무슨 술이야?”
“... 아픔을 잊기 위해 먹으려고..”
“술 대신, 약 먹고 잊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맥주를 먹다 보니, 요즘엔 맥주 하나 먹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한다.
“냉장고에 있는, 500ml 두 캔만 먹자.”
“이 두 개만 먹고, 더 이상 안 먹을게.”
“우리 같이 먹을까? 나 하나 먹고, 너 하나 먹고.”
“내일부터는 아예 맥주를 끊을게.”
“몸이 아프다 보니.. 목이 너무 말라. 물보다 흡수가 빠른 맥주를 먹어야겠어.”
“.... 이혼할래?”
사정과 협박. 회유와 논리정연한 설명. 모두가 먹히지 않는다. 비장의 수단을 썼다.
“시우엄마. 이리 와봐. 유통기한이 오늘까지네.”
아내가 와서 매주캔 뒷 면을 보더니. 잠깐 한숨. 그리고는 포기한다.
“이것만 먹어.”
오늘은 어제 보다 몸이 더 안 좋아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침대에서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뒤지다, 감기환자에게는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오늘 뉴스를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닭고기를 먹어야겠어.”
닭고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육류다. 십여 년전, 내가 군대에 갔을 때, 집에 남은 전 가족이 나 군 생활하는 동안 닭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의했을 정도로, 닭고기라면 사죽을 못 쓴다. 지번 주에만 벌써 두 번을 시켜 먹었다. 내 말에 아내의 눈빛이 변한다.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배 근육을 안타까워하는 아내의 권유로, 한 달에 두 번만 시켜 먹기로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아플 때는 단백질이 필요하다잖아.”
단골집에 전화를 했더니, 지금 출근 중이라며 늦게나 가능하단다. 그래서 처음으로 처x집 치킨에 주문을 했다. 전단지를 보고, 허브 in 프라이드라는 치킨을 시켰다.
어이가 없다. 딱 봐도 며칠 지난 기름으로 튀긴 닭이다. 하루 이틀 닭 먹는 것도 아니고, 닭이라면 나도 선수라고 자부하기에 순간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타 닭집에서 새벽에 시키는 프라이드 - 하루 종일 닭 튀기고 남은 기름으로 튀기는 프라이드 -도 이것보다는 깨끗한 기름을 쓴다. 5,000원짜리 닭을 파는 곳의 프라이드치킨도 이렇게까지 더러운 기름으로 튀기지는 않는다. 요즘엔 정보가 발달되어서 소비자들도 알만큼 다 알고, 어설프게 했다가는 바로 퇴출당하는 세상인데, 이렇게 장사를 하다니. 나만해도, 다시는 이 처x집 치킨에서는 닭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닭을 모두 다 먹었다. -.-
닭을 먹고 나니, 아내가 먹은 것을 치우란다. 아픈 몸을 이끌고 억지로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는데.. 그런 망발을.. 하며 아픈 표정으로 바닥을 뒹구는데, 그런 내 모습을 아내가 찍었다. 오늘은 면도도 안하고,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감지 않아.. 완전 폐인 상태인데, 그걸 사진으로 찍다니.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내 황폐한 모습에 우리 아들 시우도 놀랬나 보다.
바로 호통을 친다. -.-
아내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몇 장 찍었다. 오랜 기간 책이 많아 보이도록 하는 프레임을 연구해서, 이제 조금씩 결실이 보인다. L자 형태로 되어있는 책장의 한쪽 면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실제 가진 것보다 많아 보인다. 조금 더 연구하면 국회 도서관처럼 보일 수도 있는 사기 샷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에 책이 많은 것처럼 보이면, 왠지 있어 보인다. -.-
야설이 많은 탓에, 책 제목은 보이지 않도록 작게 리사이즈했다.
엄마가 책을 뺏자.. 다시 호통을 친다.
집안에만 있어 갑갑한 마음에,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산소를 발생시키는 화초(?) 사진 한 장 찍고 있는데, 아내가 나를 찾는다.
“여보. 시우 좀 봐.”
시우가 식탁 밑에 들어 가 있다.
껄껄 웃다가 사진 한 장!
요즘 우리 아들.. 눈에 보이는 것은 무조건 먹는 나이가 되었다.
아까는 책을 탐하더니, 이제는 식탁 다리를 탐하고 있다.
아침에는 아빠 양말을 맛있게 빨고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
식탁 밑에서 씨름하는 시우 엄마와 시우를 바라보다, 제발 저 두 사람이 아프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내가 바라는 행복이란 정말 별 것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고 - 웃으며 살 수 있다면, 그 이상 없다. (너무 큰 바램인건가?) 화려한 인생에 대한 꿈과 거대한 야망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점이라 생각하고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 아직까지 그런 꿈과 야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 나이가 들며, 가족을 가지게 되며, 아들을 낳게 되며, 그렇게 조금씩 철이 들며, 나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꿈이 아닌, 이들의 행복이 되어 버렸다.
대수로울 것 없고, 몸도 아프고, 게다가 닭 사기(?)까지 당한 하루였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하루가 행복한 것은, 그리고 일상이 즐거운 것은 이런 가족의 행복이 함께해서일 것이다. 비록 작고 소소한 일상들이지만, 이렇게 사진기의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는 현재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훗날 이 사진을 보며 지금을 추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한 없이 행복하다. 행복한 지금의 시간과 그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준 신에게 감사하고, 별 볼 것 없는 내 인생 소설에 기꺼이 주인공이 되어 준 아내와 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더불어 오늘 내 감기를 더 악화시켜준 하이트 관계자와 단백질 섭취에 큰 도움을 준 처x집 사장님께도 감사드린다.
감사의 의미로 오늘 저녁에 맥주나 한잔 더 해 볼까나.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